정비사업전문관리 용역계약에서 “용역대금은 시공사 선정 후 시공사 대여금으로 지급한다”고 정한 약정은 지급 의무를 없애는 정지조건이 아니라 지급 시기를 정한 불확정기한이다. 서울고등법원 2024. 2. 15. 선고 2023나2025726 판결은 시공사가 선정되지 않았더라도 그 실현이 조합의 노력에 달려 있고 조합설립인가 후 약 3년 10개월이 지나 시공사를 선정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기간이 지났다면 이행기가 도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제1심은 같은 조항을 불확정기한으로 보면서도 이행기 미도래로 청구를 기각하였으므로, 두 심급의 차이는 합리적 기간 경과 기준의 적용 여부에 있다. 김영진 변호사는 개발사업·정비사업 용역계약의 불확정기한 이행기 도래를 다툴 때 사업계획서나 인가서에 기재된 예정 시기를 첫 자료로 확인한다.
한눈에 보기
| 항목 | 내용 |
|---|---|
| 사건번호·선고일 | 서울고등법원 2024. 2. 15. 선고 2023나2025726 판결(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5. 18. 선고 2022가합516734 판결) |
| 쟁점 | 정비사업전문관리 용역계약의 “시공사 선정 후 시공사 대여금으로 지급” 조항이 정지조건인지 불확정기한인지, 시공사 미선정 상태에서 이행기가 도래하였는지 |
| 제1심 결론 | 불확정기한이나 시공사 미선정·사업 미좌초로 이행기 미도래, 기성 용역대금 청구 기각 |
| 항소심 결론 | 불확정기한이고, 조합설립인가 후 약 3년 10개월 경과로 합리적 기간이 지나 이행기 도래, 기성 용역대금 513,165,945원과 대여금 100,000,000원 인용 |
| 핵심 법리 | 기한이 되는 사실의 실현이 채무자에게 달려 있고 채권자가 영향을 줄 수 없으면, 그 사실이 불가능으로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합리적 기간 내에 발생하지 않은 때 이행기가 도래한다(대법원 2009다16643·2017다205127) |
| 적용 범위 | 토지 매매 잔금을 “아파트 사업계획승인 후 지급”하기로 한 특약을 불확정기한으로 보아 4년 9개월 경과 후 이행기 도래를 인정한 대법원 2005다40754 판결이 있고, “PF 실행 후 지급”·“분양 개시 후 분양수입금으로 지급” 약정에도 같은 구조가 적용된다(이 글의 적용) |
사실관계와 쟁점
정비업체(원고)는 2016. 1. 재건축 추진위원회와 용역계약을 체결하였다. 용역대금은 단계별로 지급하되 제6조제1항 단서에서 “1차 용역계약 체결 시부터 4차 사업시행인가 시까지의 용역비용은 시공사 선정 후, 시공사 대여금으로 지급하며, 이자는 지급하지 않는다”고 정하였고, 정비업체가 추진위원회에 대여한 1억 원의 변제기도 시공사 선정 후 청구받은 날부터 30일 이내로 정하였다. 조합은 2020. 3. 12.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네 차례 변경인가를 거쳤으나 2021. 7. 계약 해지를 통보하였고, 2023. 12. 정비계획 변경안을 다시 제출하는 등 사업시행계획인가에 이르지 못하였다. 시공사는 선정되지 않았다. 정비업체는 조합설립인가까지의 기성 용역대금과 대여금을 청구하였다.
쟁점은 두 가지다. 위 조항이 시공사 선정을 정지조건으로 한 것인지 이행기를 불확정기한으로 정한 것인지, 그리고 불확정기한이라면 시공사가 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행기가 도래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다.
법원의 판단 — 제1심은 이행기 미도래, 항소심은 도래
제1심은 제6조제1항 단서를 이행기를 정한 약정으로 보면서도, 시공사가 선정되지 않았고 사업이 중단되거나 좌초되어 불확정기한이 도래하였다고 볼 자료도 없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하였다. 조합이 해지를 주장하며 이행 수령을 거부하였으므로 이행기가 앞당겨진다는 주장은, 그 약정이 조합에 자금이 없는 사정을 고려한 것이고 정비업체에도 업무상 과실이 있다는 점을 들어 배척하였다.
항소심은 같은 조항을 불확정기한으로 본 뒤 결론을 달리하였다. 항소심이 설시한 법리는 다음과 같다.
채무의 변제에 관하여 일정한 사실이 부관으로 붙여진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사실이 발생한 때뿐만 아니라 그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하게 된 때에도 이행기한은 도래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대법원 1989. 6. 27. 선고 88다카10579 판결 등 참조), 나아가 부관으로 정한 사실의 실현이 주로 채무를 변제하는 사람의 성의나 노력에 따라 좌우되고, 채권자가 그 사실의 실현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우에는 사실이 발생하는 때는 물론이고 그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더라도 합리적인 기간 내에 그 사실이 발생하지 않는 때에도 채무의 이행기한은 도래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다16643 판결, 대법원 2018. 4. 24. 선고 2017다205127 판결 등 참조).
항소심은 ① 최초 조합설립인가 후 4차례 변경인가를 거쳐 2021. 6. 21. 최종 변경인가를 받은 점, ② 각 인가서에 사업시행계획인가 신청 예정시기가 “조합설립인가일부터 3년 이내”로 기재된 점, ③ 통상 사업시행계획인가 후 시공사 선정 총회가 열리는데 사업시행계획인가 총회도 열리지 않은 점, ④ 조합이 2023. 12. 정비계획 결정 변경안을 제출하고 새로운 입안 절차를 추진하고 있어 시공사 선정까지 상당한 기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이는 점, ⑤ 절차 진행이 전적으로 조합에 맡겨져 있어 시기를 가늠할 수도 없는 점을 들어, 최초 조합설립인가일부터 약 3년 10개월이 지난 항소심 변론종결일 무렵에는 시공사를 선정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기간이 지나 이행기가 도래하였다고 보았다. 대여금의 변제기도 같은 논리로 도래하였다고 보아 합계 613,165,945원과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하였다.
판시의 의미 — 정지조건과 불확정기한의 구별, 그리고 합리적 기간 기준
두 심급은 계약의 유효 범위와 대금 액수에 대하여 같은 판단을 하였고, 이행기 도래 여부에서만 갈렸다. 제1심은 기한이 되는 사실의 발생 불가능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항소심은 합리적 기간 경과 기준을 적용하였다. 인가서에 기재된 사업시행계획인가 신청 예정시기(3년)라는 객관적 지표와 실제 경과(3년 10개월)를 대비한 점이 판단의 근거였다. 정비업체의 업무상 과실은 이행기 판단이 아니라 인가 이후 업무에 대한 대금 청구를 배척하는 사유로만 고려되었다.
정지조건과 불확정기한의 구별 기준은 대법원이 정리하였다. 부관에 표시된 사실이 발생하지 않으면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면 조건이고, 표시된 사실이 발생한 때는 물론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된 때에도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면 불확정기한이며, 이미 부담하고 있는 채무의 변제에 붙은 부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변제기를 유예한 것이다(대법원 2003. 8. 19. 선고 2003다24215 판결, 대법원 2013. 8. 22. 선고 2013다27800 판결). 이미 제공된 용역의 대금을 시공사 미선정을 이유로 영구히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 사안의 약정은 불확정기한으로 해석된다.
불확정기한이면 기한이 되는 사실의 발생이 불가능하게 된 때에도 이행기가 도래한다. 대법원 1989. 6. 27. 선고 88다카10579 판결은 합의해제된 점포 임대차의 계약금·중도금을 “점포가 타에 분양 또는 임대되는 때” 반환하기로 한 약정에서, 1년 5개월이 지나도록 제3자가 점포를 사용하고 있어 분양·임대가 불가능하게 되었다면 이행기가 도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2006. 12. 21. 선고 2005다40754 판결은 토지 매매 잔금을 “아파트 사업계획승인을 득한 후” 지급하기로 한 특약을, 당사자가 사업승인을 확실한 것으로 전제하고 시기만 불확정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과 기존 채무의 변제에 붙은 부관이라는 점을 들어 불확정기한으로 보고, 국토이용계획변경신청이 반려되고 진척이 없는 채 계약일부터 4년 9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사업승인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이행기가 도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불가능 여부는 당사자의 의사, 기한이 되는 사실의 종류와 특성, 경과한 기간, 사회경제적 상황을 참작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한다. 이는 별도 글에서 다룬 창립총회·조합총회 의결 문제와 연결된다.
유사·대비 — 개발사업의 “자금 조달 후 지급” 약정에 적용하면
“사업계획승인 후 지급” 유형은 대법원 2005다40754 판결이 직접 판단하였다. 매수인이 아파트 사업승인을 받아야 잔금을 지급하는 구조에서 인허가 절차가 반려된 뒤 4년 9개월간 진척이 없었다면 이행기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개발사업 용역계약에서 “사업계획승인 후 지급”으로 정한 경우도 같은 법리가 적용되며, 인허가 신청 자체를 시행사가 미루고 있다면 채무자에게 달린 사실로 평가되고, 행정청의 심의 지연처럼 시행사도 통제할 수 없는 사정이 주된 원인이면 합리적 기간이 더 길게 인정될 수 있다.
“사업 진행·자금 유입 시 지급” 유형도 대법원이 다루었다. 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다16643 판결은 재건축사업 공동사업에서 탈퇴하면서 “스폰서가 영입되거나 사업권을 넘길 경우나 사업을 진행할 때” 출자금을 반환하기로 한 청산약정을, 약정사유의 실현이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채무자의 성의와 노력에 달려 있고 탈퇴한 채권자가 이를 주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정지조건이 아닌 불확정기한으로 보았다. 대법원 2018. 4. 24. 선고 2017다205127 판결은 투자금을 “사업 재기 시” 지급하기로 한 부관을, 사업을 재기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변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재기가 확정적으로 불가능해졌거나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기간이 지났는데도 재기가 없으면 그때 변제기가 도래한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PF 대출 실행 후 지급”·“분양 개시 후 분양수입금으로 지급” 약정에 관한 대법원 판결은 이번 검토에서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PF 조달과 분양 시기는 시행사가 추진하는 사실이므로 위 법리가 같은 구조로 적용된다고 이 글은 해석한다. 지급 재원을 분양수입금으로 한정한 문언이 재원의 한정인지 시기의 특정인지는 별도로 다투어질 수 있다.
반대·예외 판례
이 사안과 같은 “시공사 선정 후 지급” 약정에 대하여 정지조건으로 보거나 합리적 기간 경과에도 이행기 미도래로 본 상급심 판결은 이번 검토(기준일 2026. 9. 10.)에서 확인하지 못하였다. 다만 대법원 2013다27800 판결은 조정조항상 건물 소유권이전등기 의무가 “금융기관 대출 10억 원을 받아 그중 5억 원을 지급하여 채무를 변제하는 것”을 정지조건으로 발생한다고 본 원심을 유지한 예다. 같은 구별 기준을 적용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조건으로 판단될 수 있으므로, 지급 조항의 문언과 경위가 미발생 시 이행 면제의 취지를 드러내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실무에서 확인할 판단 기준
첫째로 확인할 것은 지급 조항의 문언이다. “시공사 선정 후 지급”과 같이 시기만을 정한 문언은 불확정기한으로 읽히고, “시공사가 선정되지 않으면 지급하지 않는다”처럼 미발생 시 면제를 드러내는 문언은 조건으로 읽힐 수 있다. 둘째는 기한이 되는 사실의 실현이 누구 손에 달려 있는가다. 시공사 선정 총회, PF 협의, 인허가 신청은 채무자가 추진하는 사실이므로 합리적 기간 기준이 적용된다. 셋째는 합리적 기간의 지표다. 조합설립(변경)인가서의 사업시행계획인가 신청 예정시기, 개발사업의 사업계획서·대출의향서에 기재된 예정 시기가 객관적 기준이 되고, 그 시기를 지나 사업 단계가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자료로 남겨야 한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단계라면 “○○ 후 지급”만 두지 않고 최장 기한 조항과 사업 중단·해지 시 정산 조항을 함께 두는 것이 이행기 분쟁을 줄인다.
자주 묻는 질문
Q. “시공사 선정 후 지급”은 조건인가 기한인가? A. 서울고등법원 2023나2025726 판결의 두 심급은 모두 불확정기한으로 보았다. 대법원 2003다24215 판결의 기준에 따르면 그 사실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된 때에도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면 불확정기한이고, 이미 수행한 용역의 대금을 시공사 미선정을 이유로 영구히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볼 수는 없다.
Q. 시공사 선정이 아예 불가능해진 것도 아닌데 이행기가 도래하는가? A. 기한이 되는 사실의 실현이 채무자에게 달려 있고 채권자가 영향을 줄 수 없는 경우, 합리적 기간이 지나면 불가능 확정 전이라도 이행기가 도래한다(대법원 2009다16643·2017다205127). 이 판결은 조합설립인가 후 약 3년 10개월 경과를 합리적 기간 경과로 보았다.
Q. 몇 년이 지나야 합리적 기간이 지난 것인가? A. 정해진 숫자는 없다. 이 판결에서는 인가서에 기재된 사업시행계획인가 신청 예정시기(3년)와 실제 경과(3년 10개월), 사업 단계의 진행 정도가 기준이 되었다.
정리
용역대금을 시공사 선정 후 지급한다는 약정은 불확정기한이고, 시공사 선정이 채무자에게 달린 사실인 이상 사업계획상 예정 시기를 지나 합리적 기간이 경과하면 선정 전이라도 이행기가 도래한다. 판단 순서는 지급 조항의 문언(조건인지 기한인지), 기한이 되는 사실의 실현 주체, 예정 시기와 실제 경과의 대비다. 김영진 변호사는 개발사업·정비사업 용역계약의 ‘자금 조달 후 지급’ 약정을 불확정기한으로 보아, 그 사실의 실현이 채무자에게 달려 있고 사업계획상 예정 시기를 지나 합리적 기간이 경과하면 이행기 도래를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확인할 것은 지급 조항 문언, 인가서·사업계획서의 예정 시기, 그리고 그 시기 이후의 사업 진행 기록이다.
근거
| 구분 | 표기 | 링크 |
|---|---|---|
| 판례 | 서울고등법원 2024. 2. 15. 선고 2023나2025726 판결(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5. 18. 선고 2022가합516734 판결; 상고 여부 확인 전) | https://lbox.kr/case/서울고등법원/2023나2025726 |
| 판례 | 대법원 1989. 6. 27. 선고 88다카10579 판결(파기환송) | https://lbox.kr/case/대법원/88다카10579 |
| 판례 | 대법원 2003. 8. 19. 선고 2003다24215 판결 | https://lbox.kr/case/대법원/2003다24215 |
| 판례 | 대법원 2006. 12. 21. 선고 2005다40754 판결 | https://lbox.kr/case/대법원/2005다40754 |
| 판례 | 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다16643 판결(파기환송) | https://lbox.kr/case/대법원/2009다16643 |
| 판례 | 대법원 2013. 8. 22. 선고 2013다27800 판결 | https://lbox.kr/case/대법원/2013다27800 |
| 판례 | 대법원 2018. 4. 24. 선고 2017다205127 판결(파기환송) | https://lbox.kr/case/대법원/2017다205127 |
